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

황지언, 미술칼럼니스트

프랑스의 화가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대표작 <만종>. 이 작품은 처음부터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는 그야말로 헐값에도 팔리지 않은 작품이었지요. 하지만 1875년 밀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신기할 정도로 평가가 달라졌고, 세계에서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원래 이 작품은 미국인 토머스 G. 애플턴(Thomas G. Appleton)이 삼종기도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아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주문자가 인수하지 않게 되자, 밀레는 그림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에 전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에게 팔렸다가 되돌아오는 다양한 수난의 에피소드를 갖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벨기에 장관 쥘 반 프라에가 <만종>을 구입한 후,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종소리가 들리는듯해서 시끄럽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밀레의 다른 작품과 교환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종>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이후로 밀레의 위상과 함께 조금씩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그의 사후에는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이 평가되어 유럽과 더불어 미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1889년 미국미술연맹은 경매를 통해 <만종>을 사들였고, 미국 전역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소개하며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밀레 사후에 <만종>의 참된 가치를 알게 된 프랑스인들은 이 작품이 프랑스로 되돌아오기를 바랐고, 결국 루브르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샤르가 1890년 당시 80만 프랑이라는 큰돈을 주고 구입해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게 됩니다.

노동으로 가득 찬 일과를 마치고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경건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러한 경건함 때문일까요? 이 작품은 대중들은 물론 다른 화가들까지도 사로잡게 됩니다. 수많은 화가가 <만종>을 칭송했고, 이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특히 반 고흐는 밀레의 작품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의 유명한 작품 대부분을 따라서 그렸습니다. 

그중 <만종>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농촌과 농민을 사랑했던 밀레의 그림은 마찬가지로 농경을 사랑했던 반 고흐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 가운데 순수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두 화가를 하나로 묶어주었습니다. 반 고흐는 밀레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마음속 깊이 스승으로 여겼으며 자신이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행위를 음악가가 위대한 작곡가의 곡을 재해석해 연주하는 것과 동일시했습니다.  

밀레 생전에 <만종>은 대표작이 아니었습니다. 이 어중간한 크기의 그림은 유명하지도 않았고 인기도 없어서 판매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당시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신문에 <만종>에 대한 풍자화를 그린 것 외에는 언급된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만종>은 결국 밀레라는 화가를 전 세계에 알리게 해준 유명한 그림으로 남게 됩니다. 

지난 2000년, 프랑스에서는 밀레에 관한 국제 학술대회가 열렸는데 한 학자가 강연 중에 <만종>을 ‘한국의 시골 이발소에도 걸려있는 그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그림이 유치하다거나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만종>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한국인의 정서에 잘 부응해 특히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복제가 많이 된 그림 중 하나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판화로, 또 사진으로 복제되어 많은 이들에게 팔리고 있는 미술계의 베스트셀러입니다. 

밀레를, 또 고흐를 떠올리며 깊어져 가는 이 가을, 다시 <만종>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림1(필수): <만종 L'Angélus>(1857~59), 55.5×66cm,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그림2: <이삭 줍는 여인들 Des glaneuses>(1857), 83.8cm×111.8cm,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그림3: <양치는 소녀와 양떼 Bergère avec son troupeau>(1863년경), 81cm×101cm,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