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르른 햇살에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보냈을까?’ 지금도 항상 잠이 들기 전에 하는 생각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가족과 함께 살며 작은 음악 학교에 출강하던 단조롭지만 평탄한 하루를 살아온 제가 한국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하고 귀국한 지 13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오스트리아에서 산 시간보다 한국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어졌고, 불혹이 된 지금의 제 모습은 20대 중반의 패기만만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보며 어학 준비를 하자던 꿈은 큰 사고와 함께 물거품이 되었고, 다시 악기를 잡고 연주하기까지 몇 년간의 재활이 필요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었던 20대의 마지막은 그렇게 처절하게 흘러갔고, 다시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악기를 모두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악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박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크고 작은 공연에서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들 앞에서 ‘클래식’이라는 음악 장르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점을 알리는 특강 강연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만학도의 꿈을 가슴 한편에 남겨둔 채로.

어렸을 때부터 저는 지독한 욕심쟁이였습니다. 바이올린만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전공으로 배운 비올라에도 욕심이 생겨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 따로 입학시험을 쳐 두 학교에서 복수전공을 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지금도 바이올린과 비올라 모두의 매력에 사로잡혀 독주회에서도 두 악기를 골고루 섞어 연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 묻곤 합니다. 예전에는 “마치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라는 질문 같아요.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좋거든요”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학생들과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니 엄마 아빠 중 어느 한 쪽을 더 사랑하고 애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밥이 좋냐? 빵이 좋냐?’ 같네요. 어떨 때는 진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치즈가 흘러내리는 쫀득한 빵이 더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하며 대답할 뿐입니다.

바이올린도 하고 비올라도 하고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있지만, 욕심쟁이라 힘든 경우가 더 많은 건 무언가 포기하고 놓아야 할 때를 알면서도 쉽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항상 나보다 학벌도, 연줄도 좋고 일도 잘 풀리는 것 같고 별로인 것 같은데 더 유명해지고…. ‘나는 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면, 결국 제가 판 저만의 동굴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버리게 되어 몇 날 며칠을 칩거합니다.

이러한 허송세월을 겪어내며 저는 동굴 입구에서 자신을 끌어 올리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제 인생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보며 그때보다는 지금이 낫지 않느냐는 조금 극단적인 방법이긴 합니다. 휠체어 위에서 생활하며 척추가 뒤틀리는 것을 느끼며 일어서지도 못했던 6개월의 시간보다는 두 발로 걷고 뛸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나으니, 그때에 비하면 저는 정말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며 자신을 다독이며 적당히 포기합니다. 결국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고 만족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남들보다 느리지만 그래도 전진하게 되니까요.

유럽에서 살 때는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서로 비교하고 경쟁이 너무 과해서 보여주기식이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를 10년 넘게 해오고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회를 바꾸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타협점이란 나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나 자신을 아끼며 하나씩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시간 낭비가 아닌 또 하나의 경험이며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도 푸르른 햇빛 아래에서 부끄럼 없이 열심히 일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아니면 부끄럼 없이 열심히 놀았는지, 부끄럼 없을 정도로 휴식을 취해 다음을 위한 재충전을 했는지에 대한 작은 생각들로 나를 아끼는 하루하루를 살아보면 어떨까요?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소리가 모여 교향곡이라는 웅장한 작품이 완성되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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